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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사도에 대한 간략한 내용 설명과 함께 캐릭터 분석을 해볼까 합니다.
영조는 늦은 나이에 사도라는 후계자를 얻어 기뻐합니다. 처음 어린시절의 사도는영민하여 영조는 그 뿌듯한 마음에 직접 책을 써서 공부하게끔 할정도로 사도를 끔찍이 아꼈습니다. 그런데 사도가 점점 커가면서 글공부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그림그리고 노는데에만 집중하다보니 영조는 하나뿐인 후계자가 저렇게 놀기만 좋아하니 그것이 보기 싫었을겁니다.
후에 사도의 정치적 소양을 알아보기위해 대리청정을 시켰을때에도 영조의 정치기반인 노론을 질타하고 자신이 그동안 이루려던 탕평정책을 사도가 따라오려 하지않자 영조는 더욱 사도를 못살게 굴정도로 타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영조의 타박이 심해지자 사도는 세자의 신분으로는 할수 없는 짓들을 벌이기에 이르는데 궁인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기위해 칼을 들고 찾아 가는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영조와 자신의 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보고 그러지 못하게 됩니다.
후에 사도는 뒤주에 갇혀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되는데 그때 사도의 장인이 나타나 정조가 태어났을때 사도가 그린 용그림을 주는것입니다.
영화속에서 그 용그림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것 같습니다. 사도가 뒤주에 갇혀 죽음 맞이할때 그 용그림은 자신의 아들 정조의 미래를 상징하는것이니까요. 그래서 다음 후계자가될 정조의 미래를 생각해서 자신이 여기서 죽어야할 숙명을 받아 들였다는 의미로 해석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도세자에게 사도라는 호칭을 내린 영조는 '그리워할 사 슬퍼할 도' 자를 붙인것을 보면 아버지로서 피눈물나는 선택을 할수밖에 없는 선택을 할수 없는지를 알게 됩니다.
▦인물탐구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스토리를 길게 늘려쓸일도 없을것 같습니다. 단지 이들이 갈등하고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아야만 했는지는 그당시의 입장을 살펴보면 알수 있습니다.
영조
숙종의 2째 아들로 태어나 베다른 이복형제인 경종이 즉위후 2년만에 죽고 영조가 왕에 자리에 오릅니다. 영조는 당시 노론 세력의 힘을 뒤에 업은체 왕위에 올랐다. 이는 숙종이 미리 몸이 약한 경종이 후사를 볼수 없음을 염려하여 영조를 다음후계로 점찍어 놓았고 그 뒤를 노론이 받쳐줄것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론의 지지를 얻고 왕이 되어서 꼭 좋은것만은 아니였습니다. 항상 주변에서 영조의 정통성을 태클걸었고, 영조또한 그것을 잘알기에 항상 자기 처신을 잘하려 노력했던 임금중에 하나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관리를 칼같이 하는 사람이였기에 자신의 후계자의 문제에 있어서도 칼같은 잣대를 고집하였는데, 이것이 결국 사도세자의 죽음을 불러 일으키고 만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보면 알수 있듯이 영조가 사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얼마나 쥐잡듯이 교육열에 열을 올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자신의 첫 아들이 죽고 늦은 나이에 사도세자를 보다보니 자신의 후계를 빨리 키워야 된다는 조바심이 났을겁니다. 자신이 갑작스럽게 죽어버리면 노론과 소론의 중심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거라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한편 다른 일부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재능이 어린시절 너무나 탁월하여 정조를 바로 후계자로 세우고 싶은데 그의 아버지인 사도가 있음으로 인해서 권력구도가 분열되어 나라가 흔들릴수도 있다고 판단했을수도 있다는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정조의 비행을 트집잡아 죽였다는것이지요.
영조란 인물은 왕이라는 소임과 아버지라는 위치에서 슬픔을 머금고 사도를 죽게 내버려 두는 장면을 영화속에서 잘 묘사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정의를 구현하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자기 희생을 필요로 하는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합니다.
사도세자
조선왕조의 이씨 왕들중에는 예술에 능한 사람 혹은 무예에 능한사람들이 다분히 있었다고 기록되어 집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시조인 이성계가 고려 장군이였던만큼 장사집안의 씨가 있었던게 분명한것 같습니다. 사도세자또한 어린시절 글공부에는 별 취미를 두지는 못했지만
무술훈련을 좋아하고 타고난 신궁이라고 하였답니다. 정조가 만들어낸 무예통지의 원형을 사도세자가 처음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을정도로 활동적인 일에 더 맞는 인물이였습니다.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지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것 또한 재능이 있어서 자신의 아들 정조가 태어났을때 용그림을 그린건 유명한 이야기지요.
그도 처음부터 비행을 일삼았던 인물은 아니였습니다. 노론에 휘둘리는 아버지와 자신에 적성에 맞지 않는 왕이 되기위한 후계자 교육때문에 순간 돌아버려 궁인들을 살해 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사도가 광인 이라기보다 화풀이격으로 비행을 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짜 광인이였다면 주변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안남았을테니까요.
그리고 실제적 역사에서 뒤주에 갇힐때에도 사도는 자신이 뒤주에 갇혀 죽을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정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해 왕위에 오르는날까지 수많은 암살시도 때문에 입이 매우 거칠어지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습관이 들었다고 합니다. 장성할때까지 한시도 목숨이 위협당하지 않도록 경계 했다는것이지요. 당시 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그누구에게도 사도세자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이는 정말 아무나 할수 없는 큰 결단인것입니다. 그전에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것을 들어 많은 사람들을 죽인것을 생각하고 참고 또 참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복수는 하지 않았지만 신하들에게 욕설과 비아냥되는 말투를 심하게 하였답니다.
영조 사도 정조로 이어져 내려오는 이 비운의 가족의 역사는 공과 사의 갈림길에서 피눈물 나는 선택의 시련이 아닐까 합니다. 왕의 자리는 인륜 천륜마저 뒤에 놓아야지 하는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 실제로 영조와 정조 시대에 탕평정책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게 되니 백성을 바라보고 일을 처리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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